관리자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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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패권 경쟁 현황과 대전의 역할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배근 실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의 화상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든 장면은 국가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세계 주요 반도체 국가들은 잇따라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갖추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의 지원 정책을 발표하고,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의 유치 및 성장을 위해 보조금 지급, 세금 감면 등 각종 정책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산업정책의 부활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국가별로 세부 정책이 다소 상이하나, 최근 각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지원 정책 중 가장 큰 특징은 기술개발에 대한 지원에 집중하던 과거와 달리 자국 내 투자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 지원 방식의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투자유치를 위한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의 주정부 및 지자체 차원의 각종 지원은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에 비해 더 직접적으로 투자, 생산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 주요국은 반도체를 단순히 하나의 산업이 아닌 전략 자산이자 국가 안보의 차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차세대 선도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 또한 매우 치열한 상황이다. 치열한 경쟁만큼 대규모 투자도 계획 및 실행되고 있고, 반도체 수급 부족 사태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세계 각국에서는 이를 기회 삼아 반도체 산업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세액공제, 보조금 지원, 인프라 지원 및 인력양성 확대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유치 지원책이 나오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만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 미국 애리조나 뿐만 아니라 독일에도 신규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인텔은 자국 내인 애리조나와 오하이오는 물론 독일에도 설비 투자를 하기로 했다.
국가 간 견제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최첨단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이 반입되는 것을 막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소재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인플레이션 심화 등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중에도 각국의 반도체 투자유치 경쟁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이처럼 세계는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메모리반도체 최강국 유지 및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각종 정책을 발표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을 추진 중에 있다. 그간 각종 인허가 및 민원, 인근 지자체 간 갈등 등으로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가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전문인력, 기술, 소부장 등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의 핵심 경쟁력 또한 부족한 상황이었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광받고 있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후발주자에 불과하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업계가 고민해 왔던 반도체 제조시설에 필요한 전력 및 용수 등 핵심 인프라, 인력, 시스템반도체, 소부장 등에 대한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표 및 추진하고,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시행을 통해 특화단지를 지정하고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등 앞으로 업계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고 주요 국가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다수의 정부출연연기관들과 KAIST와 같은 대학을 통해 우수 인재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대전 또한 중요한 요충지 중 하나다. 대전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서 그간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 추진 등을 통해 반도체 산업 발전에 더욱 기여하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 과정에서 지자체 간 경쟁이 치열했고, 결국 기존 반도체 주요 기업들이 위치해 있는 지자체 중심으로 지정됨에 따라 대전은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되지 못했다. 대전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R&D 인프라와 우수 인력뿐만 아니라 반도체 주요 기업들이 이미 위치해 있거나 입주 의사가 있었더라면 아마 특화단지 지정 경쟁은 더욱 치열했을 것이다.
그럼, 반도체 주요 기업들은 왜 수도권 이남에 주로 위치해 있고, 앞으로도 수도권 중심으로 투자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 또한 지역균형발전에 앞서 반도체 제조기업들의 수도권 중심의 시설투자를 적극 지원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고 시스템반도체 등 취약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첨단 공정기술 개발 및 AI 반도체 등 고성능·저전력 칩 설계에 핵심인 우수 인력 확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 및 우수 이공계생들의 의대 선호, 국내 주요 타 산업과의 우수 인력 확보 경쟁 등이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게 더욱 큰 위기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반도체 대기업뿐만 아니라 팹리스 또한 우수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갈수록 서울 인근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소부장 기업들 또한 반도체 제조기업의 첨단공정 시설투자에 대응하기 위해서 R&D 투자를 더욱 확대함과 동시에 R&D 인력 확보를 위해 경기도 판교 등에 R&D센터를 별도로 두는 등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전과 같은 지방 지자체는 어떠한 전략으로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함께 지역 지자체 또한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먼저,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를 면밀히 분석하여 대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기술이 성장하고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짐에 따라갈수록 분업화가 이뤄지고 있고, 관련된 크고 작은 기업들이 각자의 역할에서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팹리스, 파운드리, 패키징, 테스트 등 전문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어, 분야별로 차별화된 접근법이 필요하다. 설계 역량과 제조 공정 기술 등 분야별로 요구되는 성장 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도체 성능 향상을 위해 첨단 패키징 분야의 경우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변화에 대해서는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고 기업을 유치하고자 하는 지자체 또한 지원 전략을 수립할 때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전시가 반도체 생태계 내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상세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대전에는 대덕연구개발특구라는 대표적인 과학기술 연구단지가 있다. 이곳에는 이미 반도체 소부장과 관련된 연구개발 과제를 다수 수행해 온 연구기관들과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과 연계하여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면 기업에게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본사 이전까진 어렵더라도 제조시설 기반을 두고 있는 소부장 기업들의 R&D센터 등은 유치가 가능할 것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대부분 경기 이남에 위치해 있지만, 반도체 기업 중 20% 정도는 충청권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대전이 잘 인지하여 충청권 반도체 기업들 대상의 맞춤형 차별화 전략 마련도 기업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충청권에는 여러 소부장 기업들과 파운드리, 패키징 기업 등이 위치해 있다.
지금까지 대전 내에 있는 여러 연구기관들과 대학은 이미 반도체 기업들과 다양한 협업을 경험해 왔다. 그럼에도 대전시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더욱 큰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그간의 실적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기업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철저히 분석하여 국내 반도체 산업과 대전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