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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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 곧 국가경쟁력”
패권경쟁 줄다리기 속 각국의 정책과 규제
[上 – 반도체 산업·국방 산업]
그동안 산업은 각국의 자연환경, 자원, 인구, 문화 등의 특성에 맞게 발전해왔다. 그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이자 이미지를 대표하는 브랜드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가 점점 허물어짐에 따라 후발주자들이 탄생하기도 하고, 융·복합을 통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기도 한다.
각국은 정책을 활용해 본인들의 핵심산업을 더 효율적으로 육성하기도 하며, 반대로 규제를 통해 타국을 억제하기도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전 세계 산업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선도함으로써 경제와 국가 안보를 더 튼튼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다.
하지만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만큼 패권경쟁 역시 복잡하고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주요 선진국들 사이에선 이미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시작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외교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D-Insight는 上·下편을 통해 4대 핵심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주요 선진국들의 정책 및 규제 사례를 살펴본다.
◆ 반도체법이 불러온 기술 패권경쟁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연평균 10% 이상씩 성장해왔을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보여왔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역시 2000년대 초반 나노 산업의 ‘국가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과 함께 빠르게 발전하며 국가경쟁력의 든든한 한 축을 담당해왔다.
최근 세계 반도체 시장은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 감소가 시작된 뒤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체 수출에 있어 반도체가 차지하는 영향이 가장 크다 보니 연이은 무역수지 적자가 기록되고 있다.
현재 반도체 산업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 패권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미국의 정책과 규제 하나하나에 주요 반도체 산업국가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있다.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을 승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반도체법은 미국-중국 패권경쟁의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사진=백악관]
특히 미국은 중국이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를 기점으로 대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에는 2030년까지 중국 내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단기간에 반도체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인수합병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세계 반도체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수합병의 경우 관련 8개국(한국, 미국, 유럽, 중국, 영국, 싱가포르, 대만, 브라질)의 독과점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미국이 반대하며 중국의 기세가 꺾였다. 중국 역시 미국 NVIDIA의 ARM 인수합병에 반대를 던지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무역분쟁이 꾸준히 이어진 가운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패권 경쟁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인 것이 바로 지난 2022년 8월 발표된 ‘반도체법’이라 불리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다. 이 반도체법에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시 25%의 세액 공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글로벌 기업 유치를 강화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10월에는 중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해 허가제를 적용함으로써 중국 수출에 제한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네덜란드의 동참을 요구했다. 여기에 올해 2월과 3월 발표된 보조금 심사 기준과 세부 규정안에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을 포함한 해외 우려 국가에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으며, 8월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주요 자본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즉각 대응하고 있지만 사실상 끌려다니는 형태다. 반도체 산업을 객관적으로 분석했을 때 미국과 중국의 역량 차이가 클뿐더러, 반도체 산업 자체가 워낙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이기에 기술력이 부족한 상태의 중국이 가속도가 붙은 미국을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다. 더군다나 기술은 물론 제조 장비까지 사실상 원천 봉쇄에 가까운 견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갈륨, 게르마늄 등의 수출 통제, 반도체 제품의 수입 금지 등 다른 항목에서 조치를 취하며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의 반도체 전성기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2021년 6월 ‘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해당 전략엔 첨단 반도체 양산체제 구축, 차세대 첨단 반도체의 설계·강화, 반도체 기술의 그린 이노베이션, 국내 반도체 제조 기반의 재생, 경제 안전보장 관점에서의 국제 추진 전략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해당 전략의 범적 근거를 기반으로 대만의 TSMC가 2021년 소니와 합작해 JASM을 설립하고, 이듬해인 2022년 소니·덴소와 함께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시작한 상태다. 일본은 2030년까지 자국산 반도체 매출을 현재의 3배인 15조 엔까지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2022년 11월 토요타자동차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NEC 등 8개 기업이 각각 70억 엔씩 출연하고, 일본 정부의 700억 엔 지원까지 더해져 ‘라피더스(Rapidus)’가 설립됐다. 이는 외국기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제조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EU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지역 내 반도체 생산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2020년 12월 ‘EU 프로세서 및 반도체 기술 이니셔티브 공동선언문’, 2021년 3월 ‘2030 Digital Compass’, 2022년 2월 ‘유럽반도체법(The European Chips Act)’ 등이 발표 및 통과되었다. 특히 공급 부족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반도체 제조는 대만과 동남아, 설계는 미국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는 판단에 지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세계점유율 7% 수준에서 2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유럽반도체법에는 EU와 민간기업들이 2027년까지 공공기금을 설립하고, 차세대 반도체 R&D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지역 내 최초 설립되는 반도체 생산시설에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실제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의지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아직 굳어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경기가 가라앉은 영향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비대면 활동 증가로 반도체 수요는 오히려 늘어났지만 경기 자체가 불황을 맞은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론 긍적적이다. 반도체 산업은 꾸준하게 성장해온 산업일뿐더러 특히 최근 AI, 자율주행자동차, IoT 등의 차세대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반도체의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더스트리 ARC의 ‘반도체 시장 보고서-예측(2023-2030)’에 따르면 반도체 시장 규모는 연평균 7.1% 가량씩 성장하며 2030년까지 9,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시장 점유율이 2022년 45.4%에 이르며 강력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공장 설립뿐만 아니라 AI 지원 반도체 제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도체 시장 중에서도 전기전자 부문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연평균 9.2%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칩 제어 온도, 타이머, 자동화 기능, 집적 회로 등 다양한 전자 장치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가운데 대전은 차세대 첨단산업에 활용되는 차량용 반도체와 센서 반도체의 강점을 갖고 있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국가산업단지 구축이 확정되며 부족했던 부지와 클린룸 구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다양한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이 뒷받침됨에 따라 두각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 국방 정책, 무기의 방향이 ‘자국’을 향하지 않도록
국방(방위) 산업 분야의 최대 이슈는 역시나 현재 진행형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지난 2022년 2월 발발한 이후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방 산업 측면에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기술적인 관점에서 우수한 장비의 유무를 의미하기도 하며, 더 큰 관점에선 한 국가의 안보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K-방산’이라는 키워드로 주목받는 만큼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러-우 전쟁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분쟁 이슈가 떠오르며 휴전 상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했다.
1980~2001년 미국 방산기업 인수합병 추세.[자료=War on the Rocks Media]
국방 산업 역시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이는 곳은 미국이다. 2021년 미국의 국방 지출액만 8,010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의 38%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는 2~11위 국가의 국방비를 합친 비용보다도 크다. 가장 큰 방산물자 생산국가이자 구매국가인 것이다. 그런 미국에게도 고민은 있다. 바로 방산기업 간의 산업통합이다. 2021년 기준 미국 방위산업 상위 5개 공급기업은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Raytheon Technologies), 보잉(Boeing), 노스럽 그러먼(Northrop Grumman), 제네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다. 1993년 윌리엄 페리 국방부 부장관이 방산기업의 효율성 향상과 내수시장 경쟁완화 등을 위해 정부차원의 대규모 산업 통합 정책을 발표했고, ‘최후의 만찬(Last Supper)’이라 불리는 대규모 인수합병이 시작됐다. 이를 통해 1990년대 약 51개였던 공급기업이 현재 5개로, 2016년 6만 9,000개였던 부품생산기업은 2021년 5만 5,000개로 축소됐다. 즉 소수의 기업이 높은 비율의 미국 방위산업 국방비를 수주받고 있으며, 아웃소싱이 늘어나며 자체 생산능력은 감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는 경쟁 촉진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반독점 인수합병 경계 강화와 공급업체 다각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점점 효과를 보이며 2022년 미국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인수합병 활동이 큰 추세로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중소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중소기업 전략’을 구축해 미국 방위산업 생태계의 탄력성 있는 공급망을 구축해나가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 아랍국가들과의 분쟁으로 인해 방위산업의 인식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초창기에는 프랑스산 무기에 의존했으나 1967년 프랑스가 무기금수조치령을 내리며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느끼고 독자적인 무기체계를 개발해왔다. 특히 완제품보단 첨단 레이더와 전자기술 기반 핵심체계, 부품 등에서 강점을 보이는 국가다. 기본적으로 자국 방위산업체를 보호하기 보단 경제적 경쟁구도를 조성해 전반적 수준을 높이는 방향의 정책을 보인다. 이스라엘 정부는 입찰의무규정을 도입해 모든 정부 부처 조달 사업들은 경쟁입찰을 거치도록 하면서 기존 국영기업 및 국가기관이 독점하던 방위산업에 민간기업 및 해외기업들의 경쟁참여를 유도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방산기업들은 해외 시장 개척, 첨단기술 R&D 투자, M&A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꾸준한 성장을 이뤄 2000년대 세계 수준의 방위산업 역량을 갖추게 됐다. 2006년 7월에는 수출을 통제하는 국방수출통제국(DECA)를 설립하고 ‘국방수출통제법’을 시행해 이스라엘 방산기업의 제품이 활용되는 목적을 확인하고,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 국가에는 무기를 판매하지 않도록 했다.
남미 국가별 방산기업 수.[자료=UNESP=GEDES]
브라질은 남미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 시장이다. 브라질은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군수공장이 설립되며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30년대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이 브라질 산업화 당시 수입을 줄이고 자국 내 생산을 증대시키는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방위산업에도 적용됐으며, 이 과정에서 권총과 소총, 탄약 등을 생산하는 군수공장들이 다수 건설됐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라질 정부 주도하에 ‘국가 방위산업 전략’, ‘브라질 항공우주 프로그램’, ‘군수장비계획’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방위산업을 본격 육성했다. 수입대체 정책이 지속되며 글로벌 기업들이 합작투자, 기술이전 방식으로 브라질에 진출했고, 1980~1992년 브라질 방위산업이 황금기를 맞게 됐다. 브라질 방위산업 시장에서 정부 구입이 약 6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 역시 가지고 있어 세계 각국으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단, 인근 국가에서 브라질산 무기를 이용해 공격하는 경우를 우려해 브라질 기업들은 제품 수출 시 국방부와 외교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과거 인접국에 수출되는 제품에는 150%의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수출 정책에 힘입어 수출규제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국방 산업은 현재 민감한 시기다. 러-우 전쟁의 장기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심화 등 국제정세에 날카로운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방 예산도 늘어나고 있다. 세계 국방 예산은 2031년 2조 2,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됐었지만 이미 9년이나 앞당겨 넘어버린 상태다. 독일과 일본은 2027년까지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특히 러-우 전쟁에서 기간 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가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를 활용하는 등 민간기업의 최첨단기술력도 주목받고 있다. AI, 자율주행, 로봇, 반도체 등을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있고, 이를 군사용 기술로 접목하고 시장에 유입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지난 5월까지 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방산 분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다만 미국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들이 고금리 상황에서 높은 공공 부채를 안고 있다는 점이 우려사항으로 지적되고 있어 긴축과 인플레이션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하나의 주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국방 산업 역시 K-방산이라 불리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고, 실제로도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선진국들의 패권경쟁, 경제불황 등의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방위사업청은 ‘23-27 방위산업발전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신속획득(Speedy Acquisition), 첨단기술 확보(State of the Art),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라는 ‘3S’를 기본방향으로 삼고 있다.
대전은 늘어나는 무기 수요 속에서도 첨단 기술의 강점을 더욱 살려야 한다. 특히 최근 하이브리드전, 드론전, 사이버전, 우주전 등 전쟁의 양상이 더욱 고도화되고, 복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드론이 발전함에 따라 이를 역으로 제어하는 안티드론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유·무인복합체계(드론, 로봇)에서 강점을 보이는 대전은 높은 기술 수준의 무기와 시스템으로 국방 산업을 선도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