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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alkS - 23.12. Vol.7] (READERS_전정환 커뮤니티엑스 대표/크립톤 이사) 대전의 지역 주도 혁신 생태계 구축은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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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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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지역 주도 혁신 생태계 구축은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

 

커뮤니티엑스 대표/크립톤 이사 전정환

 

 대한민국은 반세기 동안 저개발국가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했지만, 2023년 현재 인구 절벽과 출산율 저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공공주도, 국가주도 혁신에서 민간주도, 지역주도 혁신으로 전환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서울이 성장을 독점하며 과밀과 경쟁으로 '헬조선'이라 불리게 됐고, 지역은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청년들에게 매력적이지 않게 됐다. 이제 대한민국에게는 지역주도, 민간주도 혁신생태계 구축이 시대적 과제이며, 이것이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이다.

 

 지역주도 혁신생태계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인식되었으나, 효과적인 해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지만 위헌 판정으로 혁신도시 사업으로 전환했다. 이 사업은 공공기관 이전에는 기여했지만, 지역주도 혁신 생태계 조성 측면에선 미흡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앙, 지방정부 및 민간이 협력해 지역 창업생태계를 조성했으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를 이어서 다양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며 민관협력의 지역창업생태계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은 여전히 공공의 주도성이 강하고 민간주도 혁신생태계는 미약한 상황이다.

 

 서울의 경우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민간 주도혁신생태계가 크게 성장했다. 서울에는 디캠프(2012년 5월 설립), 스타트업얼라이언스(2013년 7월), 아산나눔재단의 마루180(2014년 4월 설립) 등이 생태계 조성을 주도한 반면, 지역은 아직 공공주도 혁신생태계에 가깝다. 

 

 

 대전은 유성구, 대덕구에 세계적인 연구단지인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두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지역주도 혁신생태계로 진화하는 것은 대전이 국가주도적으로 서울과의 관계성 속의 부속도시로서 성장해온 관성에서 벗어나, 충청권의 인근 도시들과의 관계성과 세계의 선진 도시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허브 도시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내는 것이다.

 

 대전의 혁신생태계의 전환을 위해서 지나온 진화의 과정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대전의 경우 국가주도 혁신생태계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지역주도 혁신생태계로의 전환은 어떤 단계에 있을까? 대덕연구개발특구는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다. 황혜란(2014,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시스템 전환 가능성에 대한 연구)은 이를 과학단지 기반구축기(1973년~1984년), 추격형 시스템 정착기(1985~2003), 탈추격형 시스템 형성기(2004~2014)로 분류한다. 과학단지 기반 구축기(1973~1984)에는 국가 발전을 위한 연구학원 도시 조성이 목표였다. 추격형 시스템 정착기(1985~2003)에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이 제도화되고 기술선진국 도약을 목표로 대형 국책 연구개발 사업들이 기획되고 시행되었다. 이후 2004년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지정되면서 지역혁신 체계로 전환을 추구하게 된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지역주도 혁신생태계로서의 전환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탈추격형 시스템 형성기로 분류된 2004년 이후 대전의 벤처기업은 양적 증가를 가져왔다. 황혜란의 논문이 쓰여진 이후인 2014년부터는 대전의 투자생태계도 태동했다. 2014년에는 4개 과기특성화대학(KAIST, UNIST, GIST, DGIST)이 주축이 되어 미래과학기술지주를 설립했고, KAIST 물리학 박사 출신 창업가 이용관 대표가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를 설립하는 등 지역 기반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는 막대한 R&D 자금 지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벤처기업들이 많이 등장하고 성장하게 되었고 코스닥 상장 기업도 다수 배출되었다. 인구 증가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대전 인구는 전반적으로 감소세지만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소재한 유성구의 인구는 2014년 33만명에서 36만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긍정적인 흐름 속에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지역주도 혁신생태계가 완성도 높게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매년 정부에서 수조원대의 연구비가 투입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개발특구임에도 불구하고 정량적 연구 성과 대비 아직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이유는 대전의 혁신 생태계가 아직 부족한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현재 부족한 점은 스타트업 커뮤니티와 다양한 영역의 경험 많은 인재들의 부족이다.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어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경영 기획, 전략, 재무, 영업,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의 최고의 전문 인재들이 필요하다. 대덕연구개발특구에는 기술인재들은 풍부하나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 성장했을 때 다양한 인재들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서 성장이 정체되게 된다. 따라서, 기업은 적정한 수준에서의 성장에 만족하고 정체되거나, 본사를 서울로 옮겨서 도약을 꿈꾸는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공공의 R&D 자금에 대한 높은 의존도도 기업이 크게 성장하는데 저해가 될 수 있다. 연구개발특구의 풍부한 공공의 R&D 자금은 기업이 초기에 핵심 기술을 연구하고 시제품을 만들어 양산하기까지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기업이 일정 규모로 성장한 이후에도 공공의 R&D 자금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회사 조직의 경영의 관행은 고객에 집중하며 시장 중심으로 지속적인 혁신하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방해 요소가 된다.

 

 특정 산업 영역의 기업들이 집적된 것은 시너지 효과를 낳지만,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창조적 혁신을 해나가는데 제약점이 되기도 한다. 초기에 기술 기업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산업의 클러스터링과 지원 체계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일정 규모 성장한 이후에 새로운 혁신과 창조를 만들어내야 할 때는 이질적인 영역과의 연결과 융합도 필요하다. 따라서, 다양한 산업과 기업들과의 연결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지역 주도 혁신생태계에 중요하다. 

 

 대전은 대덕연구개발특구라는 세계적인 연구단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서울에 종속된 국가주도 혁신의 연구특구에서 본질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선진국 한국의 도시들은 이제 전세계 도시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걸 고려할 때, 대전의 지역주도 혁신생태계가 지금 정도에 머문다면 이곳의 기업들 역시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비슷한 연구중심 도시인 콜로라도 볼더가 지난 20여 년 사이에 세계적인 스타트업 시티로 변모한 것에서 대전의 혁신생태계 전환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진화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기존의 국가혁신 체계의 경로의존성을 넘어서야 한다. 다양한 혁신 자본을 키우고 연구, 기술 중심의 창업뿐 아니라 도시 전체를 창조 도시, 스타트업 시티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인적 자본, 경제적 자본만이 아니라, 문화 자본, 창조적 자본, 커뮤니티 자본 등을 함께 키워야만 달성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정부가 정책과 예산을 편성해 하향식으로 추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 시티는 더 이상 단순계와 복잡계가 아닌 다양성의 복잡적응계를 통해 성장한다. 즉 더욱 다양성을 높이고 복잡계를 고도화하여 우연한 창발성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지역주도 혁신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과제일 것이다. 첫째, 민간 주도의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경험 많은 다양한 인재들을 유입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일하고 살기 좋은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공적인 R&D 자금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고 민간 주도의 투자생태계를 키워나가야 한다. 넷째, 산업의 집적 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들이 서로 융합되고 연결될 수 있는 기회와 커뮤니티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의 관성을 바꾸는 것은 개발도상국과 산업화 세대로부터 선진국과 MZ세대로의 전환과 맞물려 있다. 이제는 선진국에서 태어나 자라난 세대가 핵심 인재가 되고 있다. 높은 임금의 일자리가 있으면 지역으로 이주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역이 매력이 있어야 선진국 한국의 MZ세대들이 그곳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과거와 달리 창조적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지역이 되느냐는 이제 지역에 인재를 유치하고 뺏기지 않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었다. 창조적 라이프스타일은 탈추격자 시대에 다양한 영역의 융합과 창조를 통한 산업 혁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실리콘밸리가 애플과 같은 기업이 탄생하는 혁신의 성지가 되었던 것은 미국의 히피 문화와 우수한 연구 개발 역량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선택과 집중의 산업과 연구 역량의 정책만을 가지고는 지역혁신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세계적인 스타트업 시티가 되기 위해서 로컬크리에이터 생태계가 함께 형성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역의 변화관리(Change Management)는 하향식으로 설계될 수 없다. 상향식으로 장기간의 실천 영역이다. 모든 도시는 저마다 다르며 스타트업 시티가 되는 해법도 다르다. 하지만 대전의 창조도시 전환 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다른 도시의 전환의 실천적 사례로부터 유의미한 영감과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브레드 펠드, 이언 헤서웨이의 저서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2020)와 전정환의 저서 <커뮤니티 자본론>(2023)이 참고가 될 것이다. 

 

 대전에도 이미 변화의 움직임을 가져올 전환의 씨앗들이 심어져 있다. 아직은 작아 보여도 이 의미를 확인하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2023년 들어서 대전의 어은동, 궁동을 중심으로 역동적인 커뮤니티와 생태계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은동, 궁동은 KAIST와 충남대 사이에 위치한 동네로, 테크 스타트업과 로컬 크리에이터 커뮤니티가 만나고 융합되며 변화의 진원지가 될 잠재력이 큰 곳이다.

 

 지역의 다양한 혁신 자본을 키우면서 다양한 영역의 주체들이 서로 교류하고 함께 지식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유성구청의 역할도 흥미롭다. 정책 수립, 예산 투입, 관리 감독이라는 기존의 공공의 역할과 다르게 지역의 변화관리자이자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지역의 혁신 주체들과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키워냄으로써 지역의 민간 주도 혁신생태계가 커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아직 초기 단계다. 생태계의 변화는 10년 이상 같은 방향으로 노력이 지속되어야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따라서 초기 단계에서부터 장기적인 비전과 변화 전략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다양한 주체들이 변화에 지속적으로 동참하도록 하고 확산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실천의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대전이 창조도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중앙정부 대신에 커뮤니티와 생태계 조성자로서 기초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서울의 성수동이 기존의 공장지대에서 소셜벤처 생태계를 통해 창조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던 것은 성동구청의 역할이 매우 컸다. 대전의 경우 중앙정부 중심의 과학도시 설립에서 벗어나 유성구청과 유성구의회가 창조적인 지역이 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해나가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둘째, 지역 현장에서 다양한 혁신 활동의 융합이 일어날 수 있도록 민간의 매개자, 촉진자들의 성장이 필요하다. 성수동의 경우는 루트임팩트의 헤이그라운드가 혁신생태계와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만드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다. 대전의 경우 어은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윙윙 등 다양한 민간 기업들이 이러한 역할들을 해내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셋째, 지역 현장의 실천 활동을 지식화하는 포럼과 아카이브 역할 필요하다. 2023년에 처음 시작된 어은/궁동 혁신생태계 포럼은 지역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서로 경험과 지식을 교류하며 협력까지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포럼을 지속하되 아카이브 기능을 강화하여 실천적 지식 커뮤니티를 확장해나가야 한다.

 넷째, 국가 기관, 학교 등의 물리적, 문화적 칸막이를 허물고 스타트업 동네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덕연구특구에 KAIST를 비롯한 혁신적인 연구, 인재 양성 기관들이 물리적인 벽으로 인해 창조적 커뮤니티가 형성되는데 장벽이 되고 있다. 이들이 담장을 허물고 개방하도록 유도하고, 동네에서 경계를 넘어 다양한 주체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문화적 방법이 필요하다. 어은동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안녕축제, 2023년에 궁동에서 처음 열린 SIW(2023 스타트업 코리아 투자 위크) 등이 이러한 프로그램으로서 긍정적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

 

 

 혁신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변화를 키울 수 있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의 큰 행사나, 대규모 자금 투자보다,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활동을 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발견하고 서로 교류하고 지식을 창출하는 선순환의 과정을 통해 가게 되면, 3년, 5년, 10년이 지나면 큰 변화에 이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면 10년 안에 대전의 혁신생태계는 지역 주도, 민간 주도로 변화해갈 수 있다. 2023년은 어은동, 궁동을 중심으로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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