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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alkS - 24.5. Vol.9] (OPINION_전봉경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 대전 4대 핵심전략산업의 전략적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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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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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7

대전 4대 핵심전략산업의 전략적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

 

 

국토연구원 전봉경 부연구위원

 

대전은 비수도권 중 과학기술과 혁신역량이 가장 높은 도시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고도의 과학기술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연구 인력과 환경 측면에서 살펴보면 대전에는 각 산업별 관련 정부출연연구기관뿐 아니라 KAIST, 충남대학교 같은 우수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벤처생태계의 경쟁력도 상당하다. 1990년대 초중반 이후 대전에 있는 연구기관, 대학, 민간 기업 출신의 연구자들이 역내에서 창업을 이어왔으며, 특히 바이오헬스산업의 경우 관련 기업 간의 공고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벤처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대전은 첨단산업 분야를 육성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국외 선도 지역과 비교하여 미흡한 부분도 적지 않다. 최근 대전시가 중점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4대 핵심전략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전략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필자는 2022년 국토연구원에서 「비수도권 신산업 클러스터 육성방안: 충청권 바이오헬스산업 사례」 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련 종사자 61명을 인터뷰하며 느꼈던 점을 중심으로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바이오헬스산업 관련 연구였지만 4대 핵심전략산업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필요조건을 제시해본다. 

 

첫째, ‘대전=과학도시’라는 패러독스(paradox)를 깨뜨려야 한다. 서두에서 대전의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을 언급해놓고, 인제 와서 무슨 얘기인지 의문을 가질 독자가 있을 것 같다. 필자는 대전이 바이오헬스를 비롯한 첨단 산업과 벤처생태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과학자가 아닌 경영·영업·마케팅·회계·법률 등 기업 운영과 성장에 필수적인 인력이 역내에 풍부하게 공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지식을 지닌 과학자가 아무리 훌륭한 제품(기술)을 개발하더라도 홍보와 판매가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점에서, 대전에는 새로운 후보 물질을 탐색·도출하고 검증하는 등 기초연구에 특화된 인력은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그러나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소위 비즈니스(영업, 마케팅 등) 기술을 지닌 인력과 기업 운영에 필요한 비(非)과학자 인력이 부족하다. 

기업의 초기 창업 단계에서는 전문지식을 지닌 소수의 핵심 인원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성장 단계에 다다르면 기업 운영을 위한 다양한 분야의 인력 충원이 요구된다. 제품을 연구·개발하는 인력뿐 아니라 생산 및 품질을 관리하는 인력을 비롯하여 기업의 재무회계와 중간 관리자, 기술 마케팅 등 기업의 성정과 운영을 위한 필수 인력을 구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대부분의 바이오헬스산업 분야 벤처기업인은 과학자이다. 오랜 시간 연구에만 몰두한 사람이다. 전문지식을 지닌 소수의 인원으로 창업은 가능했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무지하다. 그러니 원석을 보석으로 가공하는 방법은 서툴 수 있다. 대전을 포함하여 비수도권에서 창업한 첨단 산업 분야 벤처기업 상당수가 지가가 비싼 수도권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돈과 정보에 밝은 사람’이 필요하다. 대전에서 창업한 기업인도 회사의 성장이나 임상시험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 상당수를 역내가 아닌 역외 이해관계자로부터 수급한다. 즉,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하면 비수도권 기업 상당수는 주로 서울이나 국외 벤처투자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그 결과 투자받은 대전 소재 기업이 좋은 제품(기술)을 개발해 소위 대박이 터져도 그 이익의 상당수는 서울을 비롯한 역외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즉,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이해관계자가 지역 기업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이 다시금 지역 사회(기업)에 흘러 들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바이오헬스산업 관련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지역 내 이해관계자가 지닌 자본과 정보를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시장 접근성, 자본, 비(非)연관 지식(법률, 회계, 경영 등)을 두루 갖춘 벤처캐피털(VC)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미국 애틀랜타(Atlanta) 사례를 통해서도 지역 내 벤처캐피털이 지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경우 조지아텍(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에모리 대학(Emory University) 등 우수한 연구 중심대학과 포춘지(Fortune) 선정 500대 기업의 본사가 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오헬스산업의 벤처기업 수가 상당히 낮다. 몇몇 연구자는 이 문제를 역내 벤처캐피털 역량과 연결한다. 초기 연구개발이 끝난 애틀랜타의 벤처기업은 임상시험에 필요한 자본투자뿐만 아니라 병원 네트워크, 기술 마케팅, 회계, 법률 등의 전문 인력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벤처캐피털과 더 밀접한 협력관계를 형성한다. 이 때문에 애틀랜타의 조지아텍이나 에모리 대학에서 창업한 상당수 벤처기업가는 자본과 정보 획득을 위해 역량 있는 벤처캐피털이 많이 위치한 캘리포니아주로 기업을 이전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뿐 아니라 제품과 기술을 사업화하고, 투자까지 연계할 수 있는 비과학자 전문 인력이 요구되고, 특히 지역 기업에 투자하거나 투자처를 소개해 줄 돈에 밝은 인력이 필요하다. 

 

셋째, 대전은 ‘자동차 중심의 도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전은 대중교통 수송 분담율이 다른 광역시와 비교하여 현저히 낮다. 다시 말하면, 버스나 도시철도 등 대중교통으로는 주변 공주, 청주, 세종 등과 연계가 미흡하다는 뜻이다. 사람 간 왕래를 통한 지식공유(정보수집) 활동이 활발할수록 바이오헬스산업을 비롯한 지역산업의 육성 기회가 증가한다. 그러나 대전을 포함한 충청권 전역의 광역 교통편이 불편하니 각 지역의 산업 클러스터는 섬처럼 고립된다. 예를 들면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바이오헬스산업 종사자가 시제품 생산과 임상 관련 업무를 위해 충북 오송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에 간다고 가정해 보자. 개인 차량으로는 약 40분 걸리는 거리가 대중교통으로는 버스를 3번 갈아타고 약 120분, 즉 3배의 시간이 더 걸린다. 

대전의 바이오헬스산업 관련 벤처기업은 임상시험 단계에 앞서 충청북도에 있는 관계 기관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바이오헬스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기에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방문하여 인·허가를 받을 일이 잦다. 또한, 독성 시험기관을 비롯하여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의약품 위탁생산기관(CMO) 등 충북 지역의 기관과 협력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두 기관(지역)을 연결하는 바로 연결하는 대중교통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광역 교통망뿐이 아니다. 대전 내 주요 기관 간 교통서비스도 불편하다. 기업이 밀접해 있는 대전 관평동 테크노밸리의 바이오헬스산업 종사자가 서울 출장을 가기 위해서는 주로 대전역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잦다. 문제는 회사에서 대전역을 잇는 지하철이 없다. 자동차로는 불과 30분 남짓 걸리지만, 버스를 이용하면 역까지 평균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지식(정보) 교류, 투자, 마케팅, 임상시험 등 바이오헬스산업은 사람 간의 개인적인 만남이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이런 까닭에 경쟁력 있는 국외 바이오산업 클러스터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두루 갖춘 주요 국가의 수도에 있다. 따라서, 대전의 바이오헬스산업을 포함한 다른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 안팎의 주요 기관과의 교통편 연결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넷째, 지역산업 육성을 위한 ‘자급자족’을 피해야 한다. 바이오헬스 같은 첨단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문지식과 자본은 기본이고, 대형 법률회사, 회계법인, 투자은행 그리고 대형병원 등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바이오헬스 클러스터만이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된다.

반면 우리나라를 한 번 살펴보자. 수도권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지자체가 바이오헬스산업 관련 클러스터를 육성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국토의 크기가 미국의 켄터키주와 비슷한 점을 고려하면 좁은 국토 면적과 적은 인적 자원에 비해 너무 많은 관련 클러스터가 존재한다. 게다가, 정부 예산 확보를 위한 지자체 간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역내에서 오롯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산업 분야를 육성하려고 한다. 

미국의 4대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중 하나로 여겨지는 바이오헬스 캐피탈 리전(BioHealth Capital Region)은 메릴랜드, 버지니아, 워싱턴D.C. 3개 주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유럽 최대 규모의 바이오헬스 클러스터인 메디콘밸리(Medicon Valley)는 덴마크와 스웨덴 두 개 국가(bi-national)의 접경지역에 형성되어 있다. 즉, 상당한 물적·인적 자본이 필요로 하는 바이오헬스산업의 육성은 행정구역이라는 공간적 범위를 벗어나 초광역, 초국가적인 협력이 요구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정구역으로 나눠 국지적인 측면의 산업육성을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에서 A-Z까지 모든 걸 해결하려는 완성형 클러스터 육성계획에서 벗어나 역내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하여, 가장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분야에만 특화된 특성화 클러스터 육성 전략을 계획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전만이 지닌 확실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성장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관련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에도 중요하다. 지자체의 임대료 지원 및 법인세 감면 등과 같은 입지 비용 절감 유인책은 사실상 초기 창업에만 도움이 된다. 앞서살펴본 것처럼, 기업이 지속하여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 인력과 투자자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특히, 바이오헬스 같은 과학기술 기반의 벤처기업은 매몰비용(sunk cost)이 적어 비교적 유연하게 기업을 이전할 수 있다. 이에, 대전이 벤처기업인을 비롯한 관련 이해관계자가 찾아오고 머물 수 있는 매력을 갖춰야 한다.

국외 선도 바이오헬스 클러스터의 성장 과정을 살펴봐도 초기에는 한두 개 분야의 경쟁우위만 지니고 있다가 클러스터가 점점 확대되는 과정에서 다른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이에, 대전도 바이오헬스를 비롯해 주요 핵심전략산업의 경쟁력을 철저히 분석하여,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한 내실 있는 발전 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