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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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양자시대의 실리콘 밸리를 향하여
김형수 IOT커뮤니케이션테크 부사장
지난 24년 11월부터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양자기술산업법)’이 시행됨에 따라 양자 기술의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위한 국가적 지원 근거를 제공하는 제도적 기반이 확보되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과 산업화 노력이 있어 왔으나,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차원의 뒷받침이 기대된다.
이렇게 특정 기술에 대한 독립된 법률을 제정하면서까지 양자 기술을 지원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디지털 기술 이후를 책임질 차세대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배경인 고전 물리학과 달리, 양자 역학을 활용하면 초고(超高)보안, 超高연산, 超高민감한 특성을 제공할 수 있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며 겪은 국가·사회·경제에 끼친 영향력 이상의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4년 6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특별위원회에서 심의한 '첨단바이오·인공지능(AI)·양자 글로벌 R&D 전략지도'는 양자 기술의 어두운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12개국의 기술 수준을 매겨 평가한 결과 양자 기술 중 양자컴퓨터 부문은 기술 수준이 가장 높은 미국이 100점을 받았지만, 한국은 2.3점에 불과했다. 양자 통신 부문에서도 미국이 84.8점, 중국은 82.5점을 받았으나 한국은 2.9점에 머물렀고, 양자 센싱도 한국은 2.9점을 기록했다.
양자컴퓨터 글로벌 기술수준지도.[이미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다만, 상기 글로벌 R&D 전략지도는 국가별 기술 수준을 논문과 특허, 전문가 정성평가를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12개국의 기술 수준을 매겨 평가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학계와 연구계 중심의 기술개발 역량과 성과를 기반으로 산정한 결과임을 감안할 때, 아직 산업화에서의 기회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양자 기술은 아직 대부분 과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이미 양자 기술 연구개발 분야에서 가장 핵심인 지자체이다. 국내 양자 기술개발 관련 3대 연구기관으로 일컬어지는 한국과학기술원(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KIST), 한국표준과학연구원(Korea Research Institute of Standards and Science, KRISS), 한국전자통신연구원(Electronics and Telecommunications Research Institute, ETRI) 중 2개 기관이 대전시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R&D 전략지도에서 나타났듯이 양자 기술이 과학의 영역에서 산업화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도 선도적 지자체가 될 수 있을지 아직은 불확실성이 높은 수준이다.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IT 등의 특정 산업은 즉시 연관되는 지자체가 떠오른다. 과연 대전은 양자 산업 시대의 실리콘 밸리가 될 수 있을까? 현재의 강점을 기반으로 미래를 향한 고민과 실행이 필요하다.
대전시는 양자산업 선도도시라는 명확한 시정 아젠다를 설정하고, 글로벌 양자경제 중심도시로 나아기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수립한 바 있다. 연구개발의 활성화, 인력양성, 인프라 구축과 산업화 추진 등이 그 추진전략의 핵심 주제이다.
양자산업 선도도시 대전: 비전과 목표[이미지=대전광역시]
그러나 관념적 전략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실질적 결과물의 성취이다. 무엇보다도 양자클러스터 유치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 앞에서 설명한 양자기술산업법에는 ‘국가적 연구 역량 집중을 위한 양자과학기술 연구센터와 양자클러스터의 지정’을 명시하고 있는데,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을 상호 연계하여 조성하는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KAIST)을 비롯한 유수의 대학이 대전시에 있음을 감안할 때, 기업의 영역만 강화하는 것으로 타 지자체 대비 경쟁력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다만, 양자 기술이 기존 산업의 지원 역할에만 머무르게 되면 타 지자체의 기업 역량 대비 강점 확보가 어려울 수 있어, 학계 및 연구계 중심의 스타트업/벤처기업 육성 정책 수립과 지역 정착 실행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대전시에 자리 잡은 대·중·소기업 연구부서와의 협력체계 구축으로 기존 산업계와의 시너지 창출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다행히 대전시는 개방형 퀀텀 연구 거점 허브를 향한 퀀텀 플랫폼 구축이라는 중점 추진 사업을 통해 경쟁력 강화에 한걸음 앞서나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술의 미래 진화에 대한 비전과 식견을 바탕으로 차세대 양자 기술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현재 양자 기술은 양자 컴퓨팅, 양자 통신, 양자 센싱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자 독립적으로 기술 개발되는 듯 했던 세 영역은 최근 양자 인터넷 혹은 양자 네트워크로 수렴되는 흐름이다.
양자 네트워킹 소견과 권고.[이미지=미국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자문위원회]
상기 보고서는 지난 24년 9월에 발간된 미국의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로 ‘미국 리더십 강화를 위한 소견과 권고: 양자 네트워킹’으로 명명되었다. 양자 네트워크 기술로 분산된 양자 컴퓨터를 엮어 전체 연산 능력을 강화하고, 양자 센서를 네트워크로 구성하여 그 정밀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명시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양자 인터넷 혹은 양자 네트워크 관련 정부 주도 기술개발 과제와 사업이 활발히 준비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전시는 양자 네트워킹 기술뿐만 아니라 향후 양자 기술을 활용하는 응용 서비스들도 지역 내 기업들과 함께 산업화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대전시는 대덕 퀀텀밸리 조성 업무협약(’23.04), 양자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 제정(’23.11), 양자 테스트베드 거점기관 선정(’24.01), 개방형 양자공정 인프라 선정(’24.05), 양자컴퓨팅 양자전환 스케일업 밸리 선정(’24.08)등과 같이 지자체와 지역 내 기관이 성공적 발걸음을 함께하고 있다.
양자 시대의 실리콘 밸리가 되기 위한 여정에서, 대전시는 이미 기반 환경과 시정 전략에 관한한 그 어떤 지자체보다 앞서 있는 상황이다. 기술 진화의 비전과 산업화를 선도하는 노력이 더해질 경우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대전시가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관련 지자체들을 포용하는 범국가 양자산업 네트워크의 중심 지자체가 되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