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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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외교,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가 핵심이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격화되는 美中 패권 경쟁
국제관계의 역사는 강대국의 부상과 쇠퇴를 설명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제시해 왔다. 과거에는 영토, 자원, 인구와 같은 물리적 요소와 정치, 문화, 금융, 경제와 같은 비물리적 요소가 강대국의 조건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정치와 국제경제의 주요 화두로 '기술 패권'이라는 개념이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급격한 과학기술력 발전이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 관계의 패러다임이 '지정학(Geo-politics)'에서 '기정학(Techno-politics)'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정학이 지리적 위치나 형태가 국가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면, 기정학은 첨단 기술의 확보 여부가 국가의 경제, 군사, 안보, 동맹 관계에 핵심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시대를 지칭한다. 특히, AI와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은 단순히 산업과 경제를 넘어 군사력과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분야로, 기술력이 안보와 동맹의 영역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美中의 상반된 정책과 외교
최근 재집권에 성공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역시 ‘자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미국의 글로벌 과학기술 지배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 기조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보호주의적 혁신'과 '자국 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모순적 경향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과학기술 지배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R&D 예산 삭감과 인력 유출 우려를 야기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모순을 명확히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 및 추방 시도, 과학자들에 대한 압박은 '두뇌 유출(Brain Drain)'을 가속화 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교의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 박탈 시도와 같은 사례는 글로벌 인재 유치에 대한 미국의 폐쇄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들은 미국 대학의 STEM 및 인문학 연구, 혁신, 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기여를 해왔으며, 이들의 유출은 미국의 학술 및 연구 생태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1) 최근 Nature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과학자의 75%가 해외 이주를 고려하고 있다(Goodman & Hunziker. 2005).
반면, EU, 일본, 중국 등은 미국에서 이탈하는 과학자들 및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EU는 연구 기관에 추가 예산을 배정하여 미국 과학자들의 역내 유치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하버드대에서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자국 내 대학에 유학생 수용을 요청했다.
미국의 인재 이탈 현상을 자국의 과학기술 인재 유치 전략에 가장 적극 활용하는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는 중국 정부가 추진해온 ‘천인계획’과 후속 인재 유치 프로그램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수년 간 미국 내에서 활동하던 중국계 과학자들이 미국 내 거주와 연구 환경에 불안을 느끼고 고국으로 귀환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들에게 고액의 급여, 연구비 지원, 가족 동반 거주 및 자녀 교육 지원 등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하여 귀환을 독려했고, 이로 인해 우수한 인재들의 상당 수가 ‘역류(Brain Reverse)’하는 효과가 발생하였다.
또한, 중국은 이 기회를 활용해 젊은 해외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젊은 국제 우수학자 초청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인재 풀’의 연령대를 확장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 외의 젊은 연구자들에게도 개방되어 있으며, 과학기술 역량과 국제 공동연구 네트워크를 동시에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대응은 단순한 인재 귀환 정책을 넘어, 글로벌 인재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외교이자 과학기술 안보 차원의 접근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자국의 과학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다시금 외국인 인재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
이처럼 미중 간의 과학기술 패권 경쟁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인재 확보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한 국가의 인재 정책이 상대 국가의 외교·산업 전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호 연동 구조로 진입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폐쇄적 조치는 단기적으로 미국 내 기술 유출 우려를 막을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경쟁국인 중국에 인재 유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장기적인 우위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해외 우수 과학기술 인재 유치를 위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노력과 정책 과제
기술 패권 시대에 인재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기술 주도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해외 우수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거나, 경쟁국의 인재 유입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 역시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외 우수 인재 유치에 외교적 노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출산과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과학기술 인재의 풀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과학기술 인재의 유입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기술 외교는 단순한 기술 교류를 넘어서, 인재 확보 전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국가 핵심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술 협력 중심 외교를 넘어, 장기 체류 기반 마련, 이중언어 행정지원, 가족동반 정착 여건 등 인적 자원의 국제 이동성과 삶의 질까지 고려하는 포괄적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정부는 주요 과학기술 강국 및 신흥국에 과학기술 전문 외교관을 파견하고, 현지 연구기관 및 대학과의 R&D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 EU, 아세안 국가 간의 과학기술 파트너십을 심화시킴으로써, 우수 인재가 자연스럽게 한국의 연구 생태계로 유입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또한, 세계 유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활동 중인 석학들을 유치하기 위한 글로벌 펠로우십 프로그램도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는 고정 연구직 제공, 연구자 중심의 비자 제도, 주택 및 자녀 교육 지원 등 실질적인 정착 여건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는 단기 체류성 인재가 아닌 장기 기여형 인재를 유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개발도상국의 유망한 과학기술 인재를 조기 발굴하여 국내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이후 국내 연구 생태계에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이는 과학기술 ODA와 연계한 ‘인재 기반 공공외교’의 형태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인재 유입 성과도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이다.
아울러, 외국인 과학기술 인재를 위한 이민 제도와 비자 체계의 개선도 시급하다. 현재 KAIST에서는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 학생에게 총장 추천을 통해 ‘거주 자격’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후 연구 성과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을 수 있는 이른바 ‘과학기술 우수 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 제도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부처 간의 유기적인 협력은 해외 인재 유치 전략에서 핵심적인 과제이다. 외교부, 법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인재 유치 전략을 종합적으로 조율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유입된 인재의 정착 현황, 연구 성과, 이탈 요인을 체계적으로 추적·관리할 수 있는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도 요구된다. 아울러, 과학기술 중심의 해외 인재 유치를 전담하는 ‘글로벌 인재청’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국무총리실 산하에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만 하다.
해외 과학기술 인재 유치는 단순한 인력 충원의 차원을 넘어, 미래 기술 주권과 국가의 경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 과제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인재 확보 전략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폐쇄적 정책을 기회로 삼아 글로벌 인재를 적극 유치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역시 세계적 인재의 이동 흐름을 외교적 역량과 제도적 기반을 통해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이를 국가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참고문헌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 (2022).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3. 김영사.
Goodman, A. & Hunziker, R. (2025). “Trump's Brain Drain: Scientists Look to Move Abroad as DOGE Slashes Research Funding in U.S.,” Democracy Now, 2025년 5월 25일 액세스